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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 한국인과 영어 정리-2부

월요일, 12월 09, 2013
1부 욕망의 언어 잉글리시

2부 조선, 영어를 만나다

3부 영어로 쓰는 대한민국 60년사

4부 언어의 벽을 넘어라

5부 두 언어의 미래

※EBS 법무부에서 저작권 위반이 아님을 확인하고 게시하였습니다.

2부 조선, 영어를 만나다

익숙하고 친근한 영어
그러나 130여년전 조선에겐 낯설었음
조선에게 영어는 놀라움, 두려움, 좌절이었음
19세기말 핵심에 영어가 있었음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영어

서울 정동
120년전 국제거리였음
공사관 많았음, 편의시설 늘어나며 국제거리가 됨
게다가 서양인들이 들어와 살고 교회가 들어섬, 교류, 자연스럽게 영어도 전해짐
중첩된 공간

영어가 생활에 파고듦, 명함에 쓰일 정도로 익숙

영어 익숙해진 이유:131년전
제물포
조미수호통상조약
청나라 사람이 통역으로 조약맺는 어처구니없는 일...
이중통역
그 전에 청과 미국은 뜻을 맞춤
따라서 조선만 소외됨->외국과 조약할 때마다 쓰임
->조선이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됨

그 전에도 접촉-1797년
영국 배...
조선말 채집...
두번째-1816년
영국...
이때만 해도 조선은 무관심
게다가 서양인 접촉이 금지됐었음
조선은 중국 외에 모두 오랑캐
조선이 믿었던 중국은 서양 열강에게 위축, 각축장이 됨
일본은 개항
중일은 근대화, 새로운 한반도 정세
조선은 무대책과 무관심으로 일관...
고종은 마음이 급해짐
1881년 결단
일본에 대규모 조사시찰단
개화자강정책 위해
일본에게서 배운 건 그때가 처음
예전과 확연히 바뀜
메이지유신 13년째...
유신 단행, 근대화
일본에게도 미지, 두려움..
무력이 근원인 막부 정치로 정체되어있다가 미국이 나타남, 아편전쟁 중국패배->서양에 대한 위기의식->결국 받아들임

일본은 출발부터 다름
산업화, 근대화
메이지유신의 핵심은 자본주의 육성과 군사력 강화
젊은 조사시찰단-생생히 목격
우체국
일본군 징병제로->선진국수준 화력
영어가 필요
비판세력조차 유학을 보냄

후쿠자와 유키치-일본 근대화의 상징
학교 세움
영어가 세계의 중심 언어가 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
미국, 영국을 리더로 예측
영어로 교육
서양을 배우고 익히는 학교가 됨
유길준이 최초의 외국 유학생

본격적으로 미국으로 눈을 돌림
조선책략의 영향이 컸음
러시아 남하, 일본의 야욕
미국과 조약을 맺기로 함
미국 신뢰
1883년 고종이 미국에 보빙사절단 보냄(중심인물들 다수 참여, 민영익 등)
고위층이 바로 반영할 수 있게
충격 그 자체, 신세계.
아서 대통령과 만남
->언론 대서특필, 보빙사절단에 관심
미국 신문에 국서도 실림
대규모 우체국, 방직공장, 대량생산 농장시설 등..
전기에 가장 크게 놀람
에디슨 전기회사...전기 보편화
밤에 켜지는 불
본색을 보게됨
->개화 정책 더욱 추진하게됨

이후 변화 급물살
왕립영어학교 육영공원 설립
헐버트, 길모어, 벙커 세 사람이 미국 정부 추천으로 고종이 추천해 교수로 모심
수업은 직접교수법으로
상당한 효과

독려하기 위해 왕이 친히 영어시험 치르기도(문제냄)

장봉환

여러 분야에 폭넓게 쓰임

근대적 정부기구가 생기며 영어가능한 사람 요구도 늘어남

홍우관

특수한 엘리트처럼 교육해서 역관으로 투입.

남궁억-근대화에 기여

10년동안 계속 근대화...
미국인들에게 조선 내의 이해관계를 만들어줘야 개입해줄거라고 생각

근대화 중심엔 영어

고종은 사비를 털어 일본보다도 먼저 전차를 다니게함
증기기관차도 들임
길도 넓힘
근대문명이 쏟아져들어옴

1884년 갑오개혁, 제도적 기틀 마련
과거제, 신분제 폐지->서양식 학교가 서당 대체
1910년까지 선교사 학교는 10여개, 영어가 대세가 됨
시초는 배재학당-누구나 입학가능
교육이 양반의 전유물이었었음
양반과 상민이 함께 공부
조선 500년 역사에서 처음

고종이 하사한 이름 배재학당..왕이 인정
지원도 아끼지않음
가난한 학생에게도 일을 시킴(근로장학금처럼)
신분과 나이를 초월하며 사회를 바꿈

그 중 이승만
영어 실력 출중
미국 활동...이후 초대 대통령되는 데에 영향

거버너스 더머 아카데미
유길준이 공부했던 학교
1763년 개교, 건국 핵심인물 다수 배출, 전세계 유학생이 오는 명문 학교
유길준:귀국 포기, 유학 결정
기념석도 있음
조선개화의 수단이며 자신의 개화파 활동 기반
몰락 가문 출신이어서 과거급제 못함, 그러나 고종, 영어능력자 수요때문에 사회지도층 인사가 됨

윤치호
평생 영어로 일기씀
최초의 영어통역관이 됨

생존과 발전을 위한 선택
이런 역사는 영어 성공 신화의 기원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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