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용 세이라디오
열기▼       고정
전체
글목록

살면서 배울 것이 얼마나 많은데 국영수에 집착하는가

화요일, 12월 30, 2014
한국의 입시 위주 교육이 심화되며 문제점이 불거져 나오고 있고, 그것이 역사적 배경에 기반한 학벌주의에 대한 집착의 결과라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간단히 이 문제를 고찰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불과 몇 년 전 수능을 치뤘기 때문에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특히 수능 수학의 고난도 문제는 상당수가 풀이를 떠올리기 어렵기로 유명하다. 수학은 논리적이므로 지식에서 유추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관념을 가지기 쉽지만,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수많은 기출문제를 풀며 문제 유형을 익히고, 많은 인강에서 내로라 하는 강사들이 과거 수능 출제 내력과 경향을 분석해 예측까지 내놓으며 찌라시처럼 학생들 사이에 전파된다. 필자가 어느 모의고사를 봤을 때는 마지막 문항이 유명 인터넷 강사가 다뤘던 문항과 거의 동일했었다. 한 개인으로서 일반화하기 조심스럽지만, 아마 대부분의 수능생들이 문제 몇 개에 큰 점수와 등급이 갈리는 경험을 하며 불합리함을 체감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EBS와 각종 문제집에 들어있는 기출문제를 더 많이 풀지 못한 자신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며, 또는 어쩔 수 있겠냐며 아픈 마음을 넘겨버리곤 한다.

그러나 다수의 학생들은 이런 문항들에 붙는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 같은 거창한 타이틀이 공허하게 보인다고 호소한다. 사실상 문제 유형에 상당히 의존적인 데다가 창의성의 의미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학생, 고시생이 이 유형을 정복하기 위해 쓰는 시간은 굉장한데, 그래서 수능이 끝나면 문제집들을 모두 쓰레기장에 버리는 진풍경(사진 보기)이 펼쳐진다. 요컨대 한국의 교육은 반복적인 학습과 암기를 요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마치 국어 주관식 문항에서 시조 일부분을 암송할 수 있을 정도로 달달 외워 답안에 적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필자는 이른바 정규 과목에 대한 집착이 학습 분야를 협소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낙후된 경제 환경에서 비교적 사회의 복잡성도 낮고 따라서 교육 필요성도 적었던 과거에는 달달 외워서 시험 점수를 잘 받고 경쟁하듯 좋은 학벌을 얻어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어 왔지만, 복잡한 현대에 평생 교육이 강조되는 것처럼, 구태여 학생만이 아니라도 모두가 살면서 배우면 좋은 것이 굉장히 많은 시대이다. 혹자는 전문화되지 않은 줄기세포같은 학생들이 배울 것이 뭐가 많느냐 하기도 한다. 이들은 많은 것을 공부하기보다 반복적으로 많이 공부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당장 한 대학의 교양 과목 목록만을 훑어보아도 민주주의, 자본주의, 세계화 사회의 일원으로서 알아야 할 것이 가히 차고 넘친다. 대표적인 예로 독일에서는 사회 과목에서 노사 교섭을 실습하는 등 생활에 밀접하고 자본주의에서 흔히 발생하는 불균형의 문제를 해결할 힘을 주는 노동교육을 실시한다. 그에 반해 비실용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에 치중했다는 비판을 받는 고등학교 사회 과목은 흔히 시험을 위해 반짝 암기하는 것에 그친다.

자세하게 교육 제도를 뜯어보면 과거의 학벌주의가 현재 상황에 맞지 않게 잔존함으로써 평가 방식도 암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험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앞서 언급했듯 같은 내용을 필요 이상으로 반복하며 강박적으로 암기한다. 돌이켜보면 공부한 것을 아무리 스펀지같은 젊은 두뇌로 달달 읽으며 암기해봐도 암기력이 극도로 발달한 사람이 아닌 이상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 외에는 시험이 끝난 뒤 쪽지에 적었던 메모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다. 또한 외우더라도 머릿속에 맴돌 뿐 나중에 필요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워낙 이런 불편한 방식에 익숙해져서 느끼지 못하지만, 스스로 흥미를 느낀다면 수업시간에 잠깐 배워도 기억에 잘 남는다. 그렇다고 암기를 달달 하고 오랫동안 다시 본다고 해도 흥미가 생겨나는 것도 아닐 뿐더러 교사들이 억지로 흥미를 키워주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교육 1위 핀란드처럼 수시로 쪽지 시험을 실시하는 것 만으로도 수업 이해도를 평가하는 데에 충분할 것이다.

체계의 문제가 누적되어 질적으로 다양하고 풍부하기보다 양적으로 많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학습 분야를 늘림으로써 단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경향을 만들어내는 내부 체계의 경향성을 파악하고 그 허점을 장기적으로 고쳐야 한다. 교육 또한 더 잘 살고 싶은 경쟁심을 동력으로 삼을 수 있지만 그릇된 체계에서 인정받는 대표적 유형인 좋은 점수를 따내기 위해 관심도 없고 도움도 안 될 수능 과목을 깊이 파헤치는 것은 참으로 비효율적인 일이다. 이 경향성으로 인해 학생들은 청춘의 빛과 여가, 행복, 잠 등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으며, 그 열정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학생이 살아갈 양식이 되는 경험과 지식, 교양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의 명문대생도 풀기 힘든 미적분 문제는 풀 수 있지만 이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소수가 핍박받고 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며 실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사회 및 정치 활동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행복하지 못하다면 체계의 비극이라고 할 만하다.

요즘 금융 안정과 국가 경쟁력을 위해 금융 지식 학습이 장려되고 있는데, 필자가 경제 분야를 학습하면서 느낀 바로는 국부론, 자본론처럼 꼭 읽어봐야 할 경제 교양 도서를 읽는 것은 물론 극심하게 변동하는 세계 경제를 파악하고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라도 끊없는 학습이 필요하다. 그 외에도 청소년 권장 도서만 해도 적어도 수백 권은 될 것이다. 예술성이 풍부한 걸작 영화도 많다. 그러나 당장 성인과 초중고생의 연 평균 독서량이 각각 10, 30권 정도에 불과(ZD넷)하고, 게다가 재미를 위한 소설과 만화 등을 제외하면 굉장히 저조할 것이다. 흔히 대학생들이 고등학생까지 온실 속에서 살다가 갑자기 현실에 부딪치니 당황스럽고 지난 세월이 후회된다고 토로한다. 도구적 이성을 갈고 닦는 것도 좋지만 현실의 쟁점에 대해 다루고 새로운 관점을 접하고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것이 진정 공허하지 않으며 행복을 만드는 교육이다. 이미 낡은 학벌주의를 버리고 혁신을 이룰 때이다.
첫 댓글을 써주세요!

댓글을 인용하려면 @![댓글 ID]!@와 같이 쓰시면 됩니다. "@!" 와 "!@"를 쓰시려면 "+@+!+", "+!+@+"와 같이 써주세요.

페이스북 댓글
.post-outer{ -webkit-transform:none; transform:none; display:inline; padding:0; margin:0; border-width:0; } .hentry>div{ display:no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