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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은 같아도 생각이 다르면 의미가 달라진다.

토요일, 10월 26, 2013

회색은 검은색과 함께 있으면 흰색으로도 보이고, 흰색과 같이 있으면 검은색으로도 보인다. 이처럼 사람에 따라 같은 행동이라도 의미, 감정, 의도,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큰 업적을 이루었다고 하자. 뉴스기사가 뜬다. 댓글에 다들 칭찬 일색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저 업적이 아직 별 의미가 없다는 점을 든다. 그럼 이에 대해 "그래도 앞으로 많은 도움을줄 업적이잖습니까"라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그렇군요. 앞으로가 기대되네요"라고 반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둘의 차이가 보이는가? 첫째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칭찬하지 않는 저 댓글에 반발심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사람은 아마 저 댓글을 하나의 정보로 인식했을 것이다.
해석에 따라 받아들이는 의미가 달라지고, 글에서 느끼는 감정도 달라지며, 글의 의도조차 갈라지고, 결과또한 예측할 수 없다.


때로는 논리보다, 너무 사소해 지나치기 쉬운 이런 것들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반대로 생각지 못한 효과를 준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요즘들어 우울한 그녀는 자신의 기분이 너무 가라앉아있는 것이 우울증, 조울증은 아닐까 우려한다. 심지어 정신병원에 상담이라도 하러 가볼까 한다. 그러면서도 확신은 없어 인터넷에 "내가 우울증인가?"하고 자꾸만 물어본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실외활동을 너무 안 했기 때문이다.(필자가 신이라고 해보자.) 하지만 그걸 모르는 그녀는 결국 상담사를 만나 열변을 토하거나 집에서 울거나 할 것이다.
이렇듯 생각의 차이, 나아가 세계관의 차이는 사람의 인생의 갈림길이 될 정도로 중요하다.(critical하다고 표현하면 딱 좋겠다.)

문제의 해결과 더 나은 결과를 원한다면, 보편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 핵심이다. 다수 의견을 따르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 속성이다. 그러나 말만 쉽다.
그럼 어떻게 보편적인 사람이 되는가? 필자가 과학을 아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직접 해보면 딱 들어맞고, 또는 일상생활에서 연관된 부분이 떠오르면 아하!하는 지적 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과학은 현실을 엄밀하고 합리적으로 바라보는 데에 아주 기초적이다. 당장 둘러봐도 여자들은 다이어트 비법서를 보고, 축구 마니아들은 축구선수들과 팀을 찾아보며 자기도 모르게 전문 지식을 쌓아 각 분야의 주류를 흡수하고 스스로 그 흐름에 참여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좋은 것은 직접 경험이다. 아니면 믿을 만한 사람에게 얘기를 듣는 것도 좋다. 권위있는 전문가의 도서나 칼럼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늑대에게 길러진 소녀마냥 사회화가 덜 된 그런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렵기 마련이다. 이건 사회 모두가 영원히 풀어나갈 문제이고, 또 다수 의견이 틀릴 때를 대비한, 또는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소수 의견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생각의 차이는 차이를 겪고, 그 차이가 있음을 진정 알 때 비로소 존중할 수 있다. 또 그것이 기반이 되어야만 판단력이 선다. 많이 겪고, 많이 느끼자. 더 나은 세상이 당신을 반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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