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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에 도달하려고 발버둥치면 어느 순간 크게 성장합니다.

월요일, 12월 30, 2013

아래의 이야기들은 모두 필자가 목표를 잃었을 때 하는 행동들입니다.
  • 시험공부를 하러 책상에 앉으면 모든 게 재밌다. 심지어 벽을 쳐다보고 머리를 매만지는 것조차 주의를 뺏는다.
  • 공부하다 그냥 한 번 끄적거려본 것이 어느새 종이 한 쪽을 차지한다.
  • 갑자기 만화를 보고싶어져서 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대부분 어느 순간 질린다.)
  • 요즘 대세라는 영화를 보려다가 준비가 다 될 무렵 후회심이 밀려오지만 그냥 보고만다.
  • 거실에 늘어져서 티비를 바라보며 멍때리다보면 어느새 주말이 훌쩍 떠난다.
  • 카톡 메세지가 와서 답장하다보니 몇백 개가 넘어간다.
이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곧 허무함과 인생무상이 밀려오곤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부모님께서 열국지를 추천하시길래 한자가 섞여있지만서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누렇게 바랜 오래된 책에 잔뜩 섞여있는 한자들때문에, 처음엔 한자사전을 펼쳐서 부수를 찾아보고 주(周), 정(鄭) 등등 나라 이름을 외우려고 하며 나름 별별 노력을 했죠. 페이지는 하루에 10쪽을 넘기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일주일이면 다 읽을 걸 왜 못 읽냐고 하시더군요. 대략 내용만 파악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나라 이름 하나하나 외워가며 읽는 것보단 차라리 이야기가 주는 교훈을 찾으라는 것이었죠.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삘(?)이 오면서 하루만에 무려 70여 페이지를 독파하여, 밀렸던 150 페이지를 이틀만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가히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만일 부모님께서 며칠만에 열국지를 읽어내라는 목표를 주지 않았다면 전 여전히 밍기적거리며 "이 많은 글들을 언제 다 읽지..." 하며 짜증이나 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1권도 다 읽지도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난데없이 흥미로워진 한자사전을 구경하고 있었을지도요.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새삼 목표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습니다. 흔히 삶의 목적지를 잃어 방황한다고 하죠... 이런 비유가 사실 잘 와닿지 않았었는데요.
매일 빈둥대던 사람에게 주말에 책을 10 페이지라도 읽게 한다면 그 사람이 과연 계속 그렇게 놀기만 할까요? 또 어떤 제조공장의 하루 양이 정해져있지 않다면 과연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수량을 맞추고 계획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목표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어떤 것이 적당한지 쉽게 알 수 없다는 점이죠. 그런 점에서 홀로 목표를 판단하고 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하루에 30 페이지 정도를 공부하고 있다고 쳐봅시다. 철수에게 매일 5페이지씩 늘려가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도록 한다면, 과연 철수는 자신의 한계를 판단하고 적당한 공부량을 정할 수 있을까요? 아마 철수는 그 요청의 결과가 없으면 무안하기에 노력은 해보지만, 많아봐야 5페이지 남짓 늘릴 것같네요. 철수에겐 아무런 동기가 없습니다.

이럴 땐 경험많고 지혜로운 조력자가 필요합니다.(마치 제 부모님처럼) 책은 안보고 한자사전이나 뒤지고 흥미가 떨어져서 다른 걸 하는 태도로는 열국지를 다 읽기 힘들었을 겁니다.(저는 작은 것에 좀더 몰입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부모님은 너무 치우치지 않도록 목표를 잡아 균형을 도모하신 거라고 볼 수 있죠.

물론 제 딴에는 나라 이름을 어느 정도 외우고 그들의 관계나 감정선에 주목하고, 한자 단어를 건드리면서 읽으면 더 이해가 쉬울 것같다고 느껴 그런 접근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루 50 페이지 이상의 목표, 그리고 부모님의 대안을 참고하여 시도하다보니 결국 책의 전체적인 흐름과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는 쪽으로 읽는 스타일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효율 극대화는 슬프게도, (마치 대자연의 약육강생, 적자생존의 법칙처럼)결과론적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이 절실한 사람들은 때로 산넘고 물건너 찾아가기도 합니다.

목표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이제 주제에 '인생의 갈림길' 이야기를 포함하고 싶어지네요.
목표는 인생의 이정표입니다. 목표는 고등학교(또는 대학교?)까지는 모두가 비슷합니다. 다같이 학교에 가고, 다 같은 수업을 듣고, 다 비슷한 목표를 가집니다.(예체능에 재능이 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 공부 잘해서 잘 되는 것을 꿈꾸죠.) 위의 열국지 이야기도 결국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책 읽는 법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개개인은 더이상 사생활에 대해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습니다. 술도, 담배도 자기 맘대로고, 무슨 일을 하든, 무슨 노력을 하든, 무슨 길을 걷든 웬만하면 마이웨이입니다.
이렇게 인생이 갈라지는 시점부터는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목표를 부여받아 이정표를 세울 수도 있지만, 다같이 걷던 어린 시절보단 아무래도 훨씬 어렵겠죠. 잘 알고 비슷한 분야에 몸담고 있지 않은 이상 충고가 어렵습니다.

이 글을 쓰며 목표의 중요성이 리더의 중요성으로 확대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목표를 강조하던 것이 왜 그렇게 상투적으로 느껴졌는지 왠지 알 것같기도 합니다.
적자생존의 냉혹한 현실은 그에 맞서 살아남고자 하는 자들에게 지혜를 요구합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 좋은 길을 선택할 수 있길 바랍니다. 건투를 빈다는 말밖에 해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노력하다보면 몇십 년의 긴 인생동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사회에 나누다보면 인류 문명의 발전으로까지 이어지겠지요.
필자는 가장 풍족한 이 시대에 지혜가 만발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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